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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성왕릉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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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성왕릉

  • 지정 : 사적
  • 한자명 : 慶州 文聖王陵
  • 유형분류 :유적_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시대 : 삼국
  • 지정일 : 2011-07-28
  • 소재지 : 경주시 서악4길 80-100
일제시대 고적으로 관리하여 오던 것을 1963년 사적으로 일괄 지정하였으며, 2011년 진지왕릉과 분리하여 재지정하였다. 문성왕은 신무왕의 아들로 신라의 쇠퇴기에 재위하였으나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하고 혈구진을 설치하여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임해전을 크게 보수하였다. 봉분에는 호석이나 상석 등이 존재하지 않으며, 남측에 1기의 표석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화재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은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문성왕릉) 이 능은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 김경응)의 무덤이라고 전하는 곳이다. 진흥(眞興)·헌안왕릉(憲安王陵)과 함께 선도산(仙桃山) 남쪽 구릉 말단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능의 지름은 20.6m, 높이는 5.5m이다. 신무왕(神武王)의 아들로 신라의 쇠퇴기에 재위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청해진(淸海鎭) 대사 장보고(張保皐)의 난을 평정하고 혈구진을 설치하여 지방세력의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임해전을 크게 보수하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신라진흥왕릉고(新羅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武烈王陵)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 4기의 고분을 진흥·진지(眞智)·문성·헌안왕릉으로 추정한 바 있다.

학술자료

  • 1. 文聖王代의 政局과 「昌林寺 無垢淨塔願記」 造成의 정치적 배경(2010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姜在光 / 발행처 : 한국고대사탐구학회
  • 2. 신라 神武-文聖王代의 정치 변동과 三韓一統意識의 출현(2015년 발행)
    학술논문 / 저자 : 윤경진 / 발행처 :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